슈퍼컴퓨터에 부는 녹색 바람 [제 787 호/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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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에 부는 녹색 바람 [제 787 호/2008-07-21]
2008년 5월 26일 새벽 3시 30분, 뉴욕 주 포킵시에 있는 IBM 연구소와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동시에 환호성이 터졌다. 2002년 시작된, 세계 최초의 페타플롭스(PetaFlops)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가 마침내 성공했기 때문이다. 페타(Peta)는 1015, 플롭스가 1초에 1번의 실수연산을 의미하므로 페타플롭스는 1초에 1015번의 연산, 즉 1,000조 번의 연산이 수행됨을 의미한다. 1초에 1조 번의 연산이 가능한 테라플롭스 컴퓨터가 등장한 지 11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지원으로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 설치된 이번 시스템의 이름은 미 남서부와 멕시코 일대에 서식하는 새의 이름을 따 로드러너(roadrunner)로 지어졌다. 땅 위를 질주하며 뱀을 잡아먹는 로드러너의 이미지는 실리콘 기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고속의 컴퓨팅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크다. 로드러너 시스템은 IBM에서 개발된 셀 프로세서 12,960개와 AMD의 듀얼코어 프로세서 6,948개를 함께 사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고성능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이처럼 과학자들이 초고속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서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컴퓨터 모의실험의 정밀도를 높일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분석해야 할 데이터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산에 필요한 정밀도를 10배 올리면 이에 필요한 계산시간은 1천 배에서 많게는 1만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번에 개발된 로드러너 시스템은 기후변화, 해양 연구, 지구과학, 천체물리, 입자물리, 플라스마, 나노 과학, 재료공학, 생명공학, 단백질 동역학, 의학, 비즈니스 과정 최적화 등 다양한 문제를 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성능향상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한편, 이 무대의 뒤에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성능향상을 위한 새로운 CPU의 개발은 물론이고, 이들을 연결하는 방식, 데이터교환방식, 새로운 알고리즘의 개발, 새로운 프로그래밍 모델의 개발 등등.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뜻밖에도 ‘에너지 절약’이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십~수백만 개의 프로세서를 연결해야 한다. 2007년 IDC 보고서에 의하면, 다른 모든 문제보다도 전력과 냉각이 컴퓨터 업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조사되었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는 컴퓨터 관련 학회나 행사에서 그리드가 가장 인기 있는 용어였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계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그린컴퓨팅(green computing)이 그리드를 능가하는 인기 용어로 떠오르는 추세다.

사실 IT 분야는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깨끗해 보이는, 즉 환경친화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IT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적지 않다. 생산과정에서 이미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사용되고 폐기물이 생성될 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거대한 환경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쓰이는 컴퓨터와 백색가전이 사용하는 전력비용은 1년에 16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발전소 30개에서 생산되는 전력에 해당된다. 또 이 같은 전력 사용량은 1억 5천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됨을 의미한다. 미국의 컴퓨터와 가전제품들이 차량 3천만대가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동일한 양을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에는 컴퓨터 자체를 구동하는 데 드는 전력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이보다도 컴퓨터 냉각과 각종 주변장치에 쓰이는 전력의 비중이 더 커진 상태다.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의 경우, 매일 5천대의 서버를 새로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큰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력과 냉각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 때문에 구글은 수력발전소와 컬럼비아 강에서 가까운 곳에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 역시 가장 싼 가격에 전력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데이터센터를 옮기고 있다.

한편 CPU의 성능 개선이 전체적인 에너지 절약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오히려 데이터통신에서의 에너지 효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예를 들면, 3.0GHz의 인텔이나 AMD 프로세서의 경우, 실제 연산에는 0.03와트의 에너지밖에 소비되지 않는다. 반면에 데이터통신에는 11와트가 사용되고 있어서, 실제 계산의 경우보다 3~400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데이터 컨트롤러가 많은 전력을 사용하면서도 5%의 시간에만 실제 데이터 전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비효율의 한 원인이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컴퓨터 운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CPU와 컴퓨터를 제작해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이고, 인내력을 좀 키워 컴퓨터를 재활용해가면서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컴퓨터와 태양전지를 투명하고 얇은 필름 형태로 제작하여 건물의 외벽을 둘러싸자는 기발한 제안도 있다. 실제로 이런 장치가 가능하다면, 200미터 높이의 건물 1채가 IBM에서 제작되는 슈퍼컴퓨터 BlueGene/L 1대를 구동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엉뚱한 제안으로는 슈퍼컴퓨팅센터를 추운 극지방으로 옮겨서 추가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서 냉각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자는 것, 그리고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을 난방 등에 재활용하자는 제안 등이 있다.

슈퍼컴퓨팅에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녹색열풍이 일순간의 유행으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페타를 넘어서 2019년으로 예상되는 엑사컴퓨팅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성능과 경제성, 환경을 모두 고려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데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